2025년 개봉한 일본 영화 ‘라스트마일(Last Mile)’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배송 시스템, 그리고 그 이면에 숨어 있는 기술 의존 사회의 불안정성을 스릴러 장르로 풀어낸 작품입니다. 팬데믹 이후 급속도로 발전한 비대면 사회, 라스트마일 물류 시스템, 그리고 사람과 기술의 거리감이 만들어낸 위기를 생생하게 그려낸 이 영화는 단순한 재난영화나 범죄물이 아닙니다. 기술과 인간, 사회 시스템을 총체적으로 돌아보게 만드는 의미 있는 영화입니다.
줄거리 분석: 감염과 물류의 교차지점
‘라스트마일(2025)’의 배경은 차세대 무인 배송 시스템이 일상화된 근미래의 일본입니다. 영화는 한 중소도시에서 시작된 정체불명의 전염병 사태와 함께 전개되며,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무인 택배 상자를 통해 확산되기 시작합니다. 전염 경로가 불분명한 가운데, 경찰과 정부는 처음으로 의심의 눈길을 ‘라스트마일 배송 드론’에 돌리게 됩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전직 간호사이자 현재는 배송 관리센터에서 근무하는 여성 ‘유키’. 그녀는 의문의 사고로 인해 오랜만에 병원 현장에 복귀하게 되고, 감염의 확산 구조와 이상한 배송 기록 사이에서 수상한 단서를 발견합니다. 동시에 도시의 시스템은 점차 마비되며, 병원, 경찰, 물류회사, 시민들이 혼란에 휩싸입니다. 이 모든 상황은 기술이 인간을 대체한 현실 속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지를 냉정하게 보여줍니다. 스토리 후반부에는 뜻밖의 반전도 포함됩니다. 감염 확산의 진짜 원인은 바이러스 자체가 아닌, 시스템 내부의 오류를 은폐하려는 기업의 조작이었다는 점. 이는 이 영화가 단순히 전염병을 다루는 것이 아닌, 기술 신뢰성, 기업 윤리, 인간 통제력의 상실에 대한 경고임을 분명히 합니다.
역사적 배경: 팬데믹 이후, ‘라스트마일’의 개념 확장
‘라스트마일(last mile)’이란 원래 물류업계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배송의 마지막 구간, 즉 소비자에게 도달하는 최종 단계를 의미합니다. 팬데믹 이후 이 용어는 단순한 배송 개념을 넘어 ‘기술이 인간과 마지막으로 연결되는 지점’이라는 의미로 확장되었습니다. ‘라스트마일(2025)’은 이처럼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기술 구조와 그 이면의 문제를 토대로 만들어졌습니다. AI, 센서, QR코드, 생체인증 등 우리가 이미 접하고 있는 기술들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어 있고, 한 시스템의 오류가 얼마나 빠르게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줍니다. 또한 이 영화는 2020~2022년 COVID-19 팬데믹 당시 발생한 ‘배송 패닉’과 ‘물류 대란’을 참조하고 있으며, 실제 일본 내에서 논란이 되었던 ‘택배를 통한 감염 가능성’ 기사와 정부 발표들이 모티브로 작용했다고 밝혀졌습니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영화 속에서 사람들이 점차 물건은 수령하지만 서로 만나지 않는 사회, ‘모든 게 연결되었지만 아무도 진짜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 사회로 변해가는 모습입니다. 이는 현재의 기술사회가 겪고 있는 가장 본질적인 문제이자, 앞으로의 재난에 대한 가장 큰 리스크로 해석됩니다.
총평: 기술을 향한 맹신, 그 후의 이야기
‘라스트마일(2025)’은 단순한 재난 영화나 스릴러로 보기엔 아쉬울 정도로 복합적이고 상징적인 메시지를 지닌 작품입니다. 특히 기술이 전부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사회에서 ‘기술 의존의 그림자’를 조명하는 점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입니다. 연출은 일본 영화 특유의 디테일과 섬세함이 살아 있습니다. 무인 시스템이 돌아가는 풍경, 감정이 배제된 도시, 냉소적으로 변해가는 시민들의 모습은 카메라 워크와 배경 연출을 통해 섬뜩하게 전달됩니다. 배우들의 연기도 돋보입니다. 특히 주인공 유키 역은 혼란 속에서도 인간적인 판단을 내리려 노력하는 인물로, 기계가 감당하지 못하는 윤리적 결정의 중요성을 상징합니다. 음향과 미술도 훌륭하게 사용됩니다. 드론이 도심을 날아다니는 기계음, 경고음, 문이 자동으로 열리고 닫히는 무표정한 공간들. 이 모든 요소가 감정 없는 사회의 차가움을 극대화합니다. ‘라스트마일’은 기술이 인간을 돕는 존재에서 통제하는 존재로 전환될 때의 위기, 그리고 그 속에서도 마지막까지 인간성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조명합니다. 영화가 끝난 후,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진짜 위험한 건 바이러스인가, 시스템인가?”
‘라스트마일(2025)’은 기술사회가 직면한 위기를 밀도 있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익숙한 시스템이 위기를 초래하는 과정, 그리고 그 안에서 인간의 역할을 다시 정의하게 만드는 이 영화는 지금 우리가 마주한 시대의 거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술을 맹신하기 전에, 인간이 통제권을 쥐고 있는지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